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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법원에 오시는 분들은 슬프게도, 비밀이 많다. 특히 자신의 아이들에게. 협의이혼이나 재판상 이혼사건에 반드시 제출되는 가족관계증명서에서 아이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면서 '이 아이는 우리 첫째랑 같은 학년이구나', '이 아이는 우리 둘째처럼 유치원에 다니겠구나', '이 아이는 어려서 엄마 아빠를 많이 찾겠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저려온다. 부모님의 이혼에 관해 아이들과 서로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지만, 많은 분들이 아이가 크면 천천히 알리겠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업무로 인해 이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이혼을 선언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아이의 심리검사결과지를 요청한 사건들이 있다. 아이가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괜찮은 상태이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설혹 아이의 마음이 아픈 상황이라면 부모님들이 잠깐이라도 싸움을 멈추고 아이를 바라봐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강한 회복탄력성을 보여주지만, 마음 아픈 내용들도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아이가 정서적 갈등을 경험하면서 발생하는 심리적 어려움에 '심리적 차단'을 방어기제로 활용하며, 자신의 경험에 최대한 감정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려 하고, 그로 인해 내면에서 발생하는 진솔한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혼란되어 스스로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부분이 안타깝게도 자주 눈에 띄었다.
국제적인 심리치료 전문가인 수잔 포워드 박사는 저서에서, 가족이 비밀을 가지고 있음에도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생활하는 것은 특히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고 하였다. 아이로 하여금 진실과 정상적인 감정을 토대로 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부정하고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자신의 느낌을 믿고 자기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
199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비밀과 거짓말'에서, 주인공은 오랫동안 마음을 무겁게 해왔던 비밀과 거짓말을 모두 털어놓은 뒤 두 딸과 함께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말한다. "이런 게 사는 거지."
가족 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신뢰의 형성은 진실한 정보의 공유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지 특히 더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출처 : 법률신문(6/22),,법대에서,,서울가정법원 정용신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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